TV라는 전통 미디어의 종말을 예언하고 나선 이가 있다. 미국의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인 빈턴 서프(Vint Cerf)다. 그의 닉네임이 '인터넷의 아버지'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그는 현재 구글의 부사장이지 않는가.
빈턴 서프는 영국의 텔레그래프지와 인터뷰에서 TV가 '아이팟 모멘트'(iPod moment)에 접근 중이라고 했다. 필경 사전에는 없는 말일테고, 추측해보면 "사람들이 노래를 아이팟에 담아 듣는 것처럼 앞으로는 TV 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우리가 보는 동영상의 85%는 사전 녹화가 된 것이므로 이것들을 컴퓨터로 내려받아 볼 수 있다"면서 "아직은 뉴스와 스포츠 이벤트, 그리고 특종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지만 점차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보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TV 컨텐츠가 인터넷으로 확산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많은 방송국들이 주머니를 털어 자신들의 컨텐츠를 인터넷에 노출시키고 이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도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이런 흐름이 'TV가 죽어가고 있다'는 빈턴 서프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터넷망 공급자들은 수백만명이 동시에 TV 프로그램을 내려받는다면 네트워크가 다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앞으로 4년 간 인터넷으로 TV 컨텐츠를 시청하는 수요는 지금보다 4배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숫자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시청 패턴도 현재의 짧은 동영상 클립에서 수십분짜리 드라마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터넷 체증'이 발생한다는 게 인터넷망 회사들의 걱정이다.
그러나 빈턴 서프는 "20년 전에도 일부 과학자들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인터넷을 쓰면 네트워크가 다운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비관론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인터넷 용량은 TV 컨텐츠를 수용할 만큼 충분하고, 혹시 모라자더라도 현재의 기술로 충분히 늘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 용량에 대해서는 빈턴 서프의 의견에 공감한다. 그러나 'TV는 죽어가고 있다'는 외침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면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TV는 죽지 않을 것이다.
TV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해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드라마와 뉴스를 보는 것은 일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빨을 닦는 것처럼 TV 시청은 그냥 매일 반복되는 일과다. 집에 들어오면 TV 리모컨부터 찾고 TV 전원을 끄는 것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이런 습관을 컴퓨터나 인터넷이 깰 것이라고? TV 컨텐츠가 인터넷에서 리플레이되면서 오히려 TV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인터넷의 아버지로서, 구글의 부사장으로서 인터넷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싶은 빈턴 서프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확실히 이번에는 TV를 과소평가했다.
TV는 절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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