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경진대회 ‘이매진컵’의 2007년 한국 대표로 선발된 세종대학교의 ‘엔샵 605’(EN#605). 팀 리더인 임찬규 팀장(컴퓨터공학부 소프트웨어 공학과 3학년)은 “미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세계 여러 나라 학생들과 경쟁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인다”면서 “올해는 이매진컵이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둬 한국 IT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보여주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드러냈다.
지난 2월 25일, 엔샵은 12팀이 참가한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1, 2차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엔샵은 오는 8월 한국서 열리는 이매진컵 세계 대회에서 세계 각국의 컴퓨터 수재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교육’이라는 주제에 맞춰 엔샵이 개발한 장치는 ‘핑거코드’(finger code). 의사소통 문제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시청각 장애인들을 겨냥한 핑거코드는 시청각 장애인들의 언어인 점자를 디지털 신호로 생성․전달하는 장갑과 이 디지털 점자를 텍스트나 음성으로 전환하는 소프트웨어로 이뤄졌다. 그리고 이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PDA와 장갑을 블루투스로 연결한다. 예를 들어, ‘hi’(하이)라고 인사를 할 때 손가락을 움직여 h와 i 점자를 찍으면 PDA에 hi라고 표시되면서 ‘하이’라는 소리가 난다. 반대로 상대방이 말한 소리는 PDA에서 텍스트로 전환해 장갑에 점자 신호를 전달한다.
심사를 맡은 한국MS의 박남희 상무는 “핑거코드는 장갑을 끼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의 불편을 최소화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면서 “휴대성이 뛰어나고, 소프트웨어가 간단하고, 제작비용도 높지 않아 시장성이 높다”고 치켜세웠다.
도전
엔샵은 세종대학교의 학술 동아리다. 그리고 이 동아리는 이매진컵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 엔샵은 2005년 첫 출전에서 한국대표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고 작년에는 2위에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다.
“우리가 동아리에 들어온 것은 2006년 5월 무렵입니다. 당시에는 이매진컵의 주제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2년간 쌓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수받느라 사실상 도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지요.”
엔샵 동아리는 올해 두 팀을 이매진컵에 출전시켰다. 출전 인원이 한 팀당 4명으로 제한되어서 동기 8명을 두 팀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같은 동아리이지만 경쟁자가 되어야 할 상황인데도 그들은 유쾌했다.
“대회에 나설 8명이 모여 사다리 타기를 했지요.”
임찬규(컴퓨터공학부 소프트웨어 공학과 3학년), 임병수(컴퓨터공학부 컴퓨터 공학과 3학년), 민병훈(컴퓨터공학부 소프트웨어 공학과 3학년), 정지현(컴퓨터공학부 인터넷 학과 4학년) 학생은 그렇게 한 팀이 되었다. 임찬규 학생은 “학년은 같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팀장이 된 것 같다”고 했지만 듬직한 성품이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디바이스 개발은 민병훈, 소프트웨어 개발은 임병수, 유일한 홍일점인 정지현 학생은 자료수집과 프리젠테이션을 맡았다.
‘사다리’로 갈린 또 다른 팀 ‘엔샵 603’은 이번 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했다. 1위와 3위를 동시에 거머쥔 겹경사에 세종대학교 엔샵 동아리는 한동안 축제분위기였다. 그런데 엔샵 605와 603은 무슨 뜻일까? 랩(Lab) 호실이다. 엔샵 605는 605호실, 엔샵 603은 603호실에서 대회를 준비해 그렇게 팀명을 정했단다.
좌절
2007년 이매진컵의 주제가 정해진 것은 지난해 8월. 이때부터 엔샵 605의 도전에 불이 붙었다. 방학이어서 부담은 적었다. 날마다 랩실에 모여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처음에는 그저 즐겁기만 했다.
“뭔가 도전을 한다는 데 모두들 흥미를 느꼈습니다. 각자 열성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을 하고…. 하지만 아이디어를 정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이매진컵은 큰 주제를 주고 이를 해결하는 사고력 전반의 능력을 평가한다. 거시적이면서 논리적인, 그래서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 아이디어는 현실성이 떨어져서, 저 아이디어는 참신하지 않아서…. 퇴짜를 놓은 아이템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른다.
“별의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즉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치료하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뇌에 접근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포기했지요.”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글자를 스캐닝하면 점자로 표시해주는 장치도 생각했지만 이미 상품이 나와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문장을 찍으면 모르는 단어 뜻을 알려주는 ‘포토서치’는 ‘교육’이라는 주제에 딱 맞지만 기술적인 장벽이 너무 높았다.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6개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함께 출전한 엔샵 603은 진작 아이템을 정하고 개발을 시작했는데….”
다급해진 팀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티격태격 말싸움도 늘었다. 이러다 대회에 출전하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반전
하지만 기회는 찾아왔다. 아이디어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던 지현양이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침 장애인 분야에서 일을 하던 언니가 손가락점자를 귀띔해준 것이다. 손가락점자는 6점자를 장갑으로 옮긴 것으로, 청각장애인인 일본의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가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의사소통을 해온 방법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늘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매진컵의 주제와 어울리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여기에 음성인식을 더하면 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긴 침묵에 빠졌던 605 랩실은 활기를 되찾았다. 12월 말 등록을 마치고 1월 중순의 프리젠테이션도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4월 본선.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4월에 예정되었던 출품이 갑자기 2월로 앞당겨진 것이다. 팀원 모두가 소프트웨어 전공이어서 디바이스를 개발하려면 4개월도 빠듯한데 겨우 2개월이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허겁지겁 개발을 시작했지만 제때 디바이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섰다. 디바이스를 책임진 임병수 학생은 랩실을 집 삼아 밤낮으로 개발에 매달렸다. 전문서적을 뒤지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가면서 회로를 뜯었다 붙이기를 수십 번. 어느 새 장갑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모양을 신경 쓸 형편이 아니었다. 제대로 작동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손가락점자의 신호를 처리하고 글자를 음성으로, 음성을 글자로 전환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이 녹록치 않았다. 디바이스 개발 일정을 따라야 하기에 민병훈 학생도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리고 꿈
힘겹게 개발을 마쳤지만 이들의 고난은 2월 25일 대표 선발전까지 이어졌다. 오전에 있었던 1차 선발전 시연 도중 핑거코드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나중에 보니 회로를 연결한 선이 끊어졌더군요. 그 전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말썽을 부린 것이죠. 이 때문에 4팀을 뽑는 2차 결승에 오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우리 팀이 호명되었을 때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오히려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아이디어를 정하고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힘겨운 선발전을 거쳐 가까스로 국가대표에 오른 엔샵은 이제 8월 세계 대회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지만 그래서 더욱 값진 도전이었다. 임찬규, 민병훈, 임병석, 정지현 4명은 이매진컵에서 멋진 축배를 꿈꾸고 있다.